2011년 11월 7일 월요일

2011 서점포럼 주제 발표 '콘텐츠 생태계의 변화와 서점'

<발표문>
카가와 히로시 (일본 IBC Publishing 회장)

이미 독립서점의 고뇌를 얼마만큼 들었는가? 특히, 중소서점은 대형서점의 공세에 힘들어하면서, 온라인서점과 전자책의 진출에도 더욱 시달리고 있다. 아무리 잘해보려 하여도 거래조건은 물론 각양각색의 역풍이 경영을 압박한다.

이런 투덜거림이 반복돼온 지도 이미 몇 년이 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또다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이런 황량한 논의는 슬슬 끝내고 싶다. 그리고 미래로 나아갈 단서가 있음을 확신하고 싶다.

미국에서는 올해 들어와 전자책이 태블릿PC를 통해 다각적으로 유통되게 되었다. 새로운 포맷과 컴퓨터언어의 개발로 문자와 음성, 영상을 포함한 콘텐츠의 융합이 더욱 다채롭게 변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 서점비즈니스를 영위해 나갈 수 있느냐는 테마를 진지하게 생각하고자한다.

그럼 먼저, 지금 출판업계와 그 주변을 둘러싼 과제와 앞으로 서점생존에 관하여 분석하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이야기하고 싶다.

하나는 인쇄업계이다.

인쇄업계는 출판물이 전자책 화된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 지 불안을 품고 있다. 게다가, 예를 들어 미국에서도 인쇄업계에서 인쇄에 관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지 않고 있다.

전자 출판과 마찬가지로 주목받는 POD(주문형인쇄사업)를 본격적으로 가동한 것은 대형도서총판 잉그램이다. 또한 본래 콘텐츠데이터를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인쇄업계를 대신하여 전자책을 위해 서적콘텐츠파일을 변환하여 전자책디바이스에 공급하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은 출판사 영업과 고객서비스 업무를 대행하는 디스트리뷰터라는 기업이다.

본래 인쇄업계가 짊어져야 하는 업무를 이러한 다른 업종이 운영․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업계의 사람들이 소비자와 직접 연결된 서점과 생산자인 출판사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며, 각각의 절실한 요구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예는 서점경영을 생각할 때도 참고가 된다. 여태까지 다른 업계에서 서점사업에 뛰어든 사례는 많다. 한국에서는 교보문고가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럼 서점업계가 출판계의 다른 업종에 진출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서점업계가 그 업태의 장점을 살려, 출판계의 다른 업종과 연계하여 새로운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다음은 일본과 미국의 대형서적체인이야기다.

이전에 일본은 마루젠(丸善), 준쿠도(ジュンク堂), 그리고 키노쿠니야(紀伊國屋)란 3개의 대형서점체인이 있었다. 그 뒤를 중형점포를 다수 운영하는 분쿄도(文敎堂)와 프랜차이즈를 전개․확대한 미야와키서점(宮脇書店) 등이 있었다.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CD와 DVD 대여점으로 성장한 츠다야(TSUTAYA)가 전국규모의 서점체인으로 군림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서점들의 대부분이 경영난을 겪게 된다. 특히 마루젠의 경영난은 심각했다. 급성장을 이루어왔던 준쿠도 역시 증가하는 경영자금 확보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판 불황 때문에 분쿄도의 경영상태가 악화된 것도 이 몇 년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지금 이 3사는 모두 인쇄업계 최대기업인 다이니혼인쇄(大日本印刷)의 산하가 되어 준쿠도를 기축으로 한 거대서점체인그룹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키노쿠니야와 츠다야도 재편될 것이라는 소문이 들리고 있다. 다이니혼인쇄의 지원을 받은 마루젠, 준쿠도, 분쿄도는 거대점포를 각지에서 계속 오픈하고 있지만 전체실적은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 시도가 실패하면 일본의 서점업계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러한 만큼 다이니혼인쇄도 앞으로 어떻게 실적을 호전시킬 것인가 하는 심각한 과제를 떠안고 있다.

이와 대조적인 것이 미국의 최대서점체인 보더스(BORDERS)이다. 한때는 미국에서 2,000여개의 점포를 갖고, 외국진출에도 적극적이었던 보더스였다. 마찬가지로 거대체인으로 이름을 날린 반즈앤노블과 업계점유율을 다투고 있던 이 거대서점체인이 경영의 한계로 챕터일레븐(Chapter 11: 연방파산법의 별칭, 파산신청에 들어간 상태를 말한다.)이 된 것이 올해 초여름이다. 그러나 미국에는 다이니혼인쇄같은 구세주가 없었다. 결국 보더스는 파산하고 600개의 서점이 단번에 미국에서 소멸하였다. 이 사실은 서점의 재편이란 정말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는 동안에도 IT산업은 날마다 진화하고 있다.

앱스토어 안에 모든 것을 집어넣으려고 하는 애플은 킨들의 도전을 받는다. 앱스토어를 우회하여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전자책 판매를 통해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위협하려고 하고 있다. 애플은 올해 발표된 ePub3를 자신의 비즈니스에 포함하려했다. 이 규격으로 전자책의 음성 등 다른 콘텐츠와 융합을 더욱 촉진할 수 있다.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포함하고 이를 문자와 융합시켜 즐기는 차세대전자책의 발매도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

바로 이러한 때에 킨들의 도전은 iPad로 한 단계 더 진화하려는 애플의 독주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렇게 콘텐츠 자체가 IT기술과 함께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는 와중에서, 서점이 지금의 서점으로는 살아 있을 수 없는 날이 온다는 것은 이미 현실이다. 이를 무시하는 것은 자신만은 살아남을 거라고 자기 스스로 별일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몸 상태가 악화되는데도 검진을 받으려 하지 않는 암 환자의 심리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서점이 전혀 없는 마을의 수가 눈에 띌 정도이고, 오랫동안 영업해온 개성 있는 개인경영서점의 폐업소식이 곳곳에서 지면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다이니혼인쇄가 마루젠 등에 한 투자를 되돌아본다. 많은 사람이 그 투자를 무모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미국에서 보더스에 아무도 투자하지 않은 사례를 보면 그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아직도 투자효과는 없이 적자상태임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하지만 다이니혼인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쇄업계의 미래도 불안한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인쇄업계는 출판계와 긴밀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인쇄라는 제작부문을 제외하면 출판사업 노하우에는 정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의 대형투자로 다이니혼인쇄는 서점경영뿐만 아니라 마루젠의 자사인 마루젠출판 등을 통해 출판노하우 전반에 접근이 가능해졌다.

다이니혼인쇄는 연간매출이 1조 엔을 넘는 대기업이기 때문에, 그 접근방법이 그대로 다른 사례에 적용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서점이 출판업계 여타업종의 노하우에 접근하여 거기에서 복합적으로 사업을 구성해가며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손을 대지 말아야 되는 것은 서적과 전혀 무관한 미지의 분야에 무모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핵심사업을 버리는 행위로 리스크가 크다.

서점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독자가 전자책으로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내년의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15년 뒤를 생각하면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래를 내다보며 미래를 선점하고 일부러 공포의 품에 뛰어드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다. 전자책이 업계를 석권하면 온라인서점조차도 일반서점과 마찬가지로 위기에 직면한다. 아마존이 킨들을 발매하고 그것의 타블렛PC화에까지 투자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원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원래 출판이 어떤 비즈니스인가라는 것을. 출판의 원점은 사람과 책상, 그리고 전화라고 일컬어져 왔다. 사람이 있고 지혜를 문장으로 하는 책상이 있고 그것을 네트워크 하여 판매하는 전화가 있으면, 출판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현대에 비추어보면, 출판은 사람과 책상과 컴퓨터가 있으면 된다. 최소한 컴퓨터로 우수한 편집자와 저자가 네트워크 된다면, 사실 출판사라는 회사 없이도 출판활동은 가능하다. 인쇄업계와 긴밀한 연계가 필요하지만, 전자책이라면 그 필요조차 희석될 것이다.

지역에 뿌리를 둔 독립서점이 더욱 친근한 저자를 통해 로컬 콘텐츠를 시야에 넣어 소량출판을 시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핵심에 두고 동시에 서점을 운영하며 서점을 사교장소로 할 수도 있다. 서점경영과 카페 등을 복합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거기에 하나 부족한 것은 이러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개성을 서점이 가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략을 짜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내 편으로 끌어당겨 아군으로 만드는 것이다. 출판에만 한정짓지 말고 온라인이라는 발상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그 서점이 미래의 새로운 모델을 낳을 때인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업종뿐만 아니라, 출판업계의 업무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 갈고닦은 노하우를 쌓는 일이다. 그 지식 안에서 미래를 여는 아이디어는 반드시 태어난다.

온라인서점과 오프라인서점은 공존할 수 없는가?

서점을 찾는 독자, 서점에 전화나 메일로 문의하는 독자에게, 재고가 없는 도서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인터넷에서 찾은 책의 실물을 독자에게 제시하는 시너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전자책과 시너지는 어떤가.

스스로 전자출판시대에 직면한 출판사업을, 비용의 중압으로 고통 받지 않으며 구축할 수 없는 것일까. 클라우드 등의 기술을 연구하여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혜를 닦을 수 없는 것일까.

가상과 현실의 진정한 융합에 대해 이제 생각해야 한다.

공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품어야 한다. 경쟁서점 사이에서도 지역 간 연계와 협조를 조성하여 일본의 넷21(Net21)처럼 공동으로 구매활동을 전개하여 대기업과 비슷한 구매조달력을 가지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 파워를 가지고 IT비즈니스에 파고드는 것은 반드시 꿈 너머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불가능해 보이는 테마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타이밍은 지금이다. 그것은 더 제대로 된 문자콘텐츠를 차세대에 계승해가기 위해 서점이 짊어져야 할 사명인 것이다.